국제기구와 승인 & 정부승인 & 망명정부의 승인 & 교전단체의 승인

I. 국제기구와 승인

근래 신생국은 독립과 거의 동시에 UN 회원국으로 가입함으로써 국제사회 에서 개별국가의 승인 여부가 특별한 역할을 할 여지가 없었다. 국가만이 가입할 수 있는 UN의 회원국이 됨으로써 자동적으로 국제법의 적용을 받게 되고, 최소 한 국제사회에서는 미승인으로 인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기 때문 이다. 다만 승인이란 개별 국가의 행위이므로 UN 회원국으로의 가입이 기존 회원 국에 의한 집단적 승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UN 자신이 특정 국가의 승인 또는 불승인을 주도하기도 한다. 남북한 은 1991년 UN 회원국으로 가입하였으나, UN 총회는 이미 1948년의 결의 제195(III) 호를 통하여 UN 감시하의 총선거를 통하여 구성된 대한민국 정부를 합법정부로 선 언하고, 회원국들에게 대한민국 정부와 한국인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였다. 후일 과연 이 결의가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유일 합법정부로 승인한 것이냐? 아니면 38 이남만을 대표하는 유일 합법정부임을 승인한 것이냐에 대하여는 해석이 엇갈렸다. 정치적으로 이 결의는 이후 수십년 동안 남북대립관계에서 대한 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이용되어 왔으나, 1991년 남북한의 UN 동 시 가입으로 이 결의의 현재적 의미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한편 UN이 특정 국가나 정부를 승인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인 가? 승인의 법적 효과라는 측면에서 검토할 때, UN의 승인이란 결국 국제정치적 의 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UN의 승인이 부여되었다면 다른 회원국들이 대상국의 국가성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UN은 때로 회원국들에 대하여 특정국가를 승인하지 말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로디지아(현재의 짐바브웨)가 1965년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백인 소수정권을 수립하자,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 제216호(1965)를 통하여 로디지아 정부를 승인하지 말도록 요구하였으며, 이후에도 유사한 결의를 반복하였다. 또한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541호(1983)는 터키의 무력지원에 의하여 수립 된 Turkish Republic of Northern Cyprus를 회원국이 승인하지 말도록 요청하였다.

냉전 종식후 동구권의 정치적 지도가 격변하자 EU는 동구 신생국에 대한 승인 의 전제로 이들 국가가 1 UN 헌장과 법의 지배, 민주주의, 인권보호에 관한 헬싱 키 협정과 파리 헌장의 존중 2 소수민족의 권리 보호 3 국경 존중 4 군축과 비핵 화 및 안보에 관한 기존 약속의 수락 5 국가승계 및 지역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약 속할 것을 요구하였다. 유럽공동체의 이러한 승인기준은 전통적인 국제법상의 국가승인의 요건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국가승인의 법적 요건을 표명하였다 기보다는 일종의 외교정책의 표시였다. 즉 승인이란 용어로 포장되었으나, 외교관 계 개설의 조건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II. 정부승인

정부승인이란 해당정부를 그 국가의 정식의 국제적 대표기관으로 인정하는 행 위이다. 정부승인의 필요는 정부가 혁명이나 쿠데타와 같이 비합헌적 방법으로 변 경되는 경우에만 제기되며, 합헌적 방법에 의한 정권 교체시에는 별도의 정부승인 이 필요 없다. 쿠데타로 정권이 사실상 교체되었어도 국가원수가 변경되지 않으면 정부승인의 문제는 대두되지 않는다. 혁명에 의하여 정부가 비합헌적 방법으로 변경된 경우에도 국가의 동일성은 유지되므로 국가승인의 문제는 제기되지 않는다. 정부승인이란 실효적인 정부가 수립되었는가 여부에 대한 객관적 판단에 불과 하다고 전제할지라도, 비합헌적 방법을 통하여 수립된 정부에 대한 승인은 그에 대 한 정치적 지지로 해석되기 쉽다.

승인의 거부는 곧 신정부에 대한 정치적 불만의 표시로 받아들이게 된다. 일찍이 1930년 멕시코의 에스트라다 외교장관은 앞으로 멕시코는 정부승인에 관한 발표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정부의 변경은 그 나라의 국내법상의 문제에 불과하며, 타국이 외국 정부의 법적 자격을 심사하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한 주권침해라는 이유에서였다. 신 정부가 국가를 실효적으로 통치하 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승인을 거부한다면, 사실 이는 단지 정부에 대한 불승인에 그치지 않는다. 즉 법적으로는 동일성이 유지되고 있는 국가와의 교섭이 불가능해지며, 그 국가의 계속성을 외면하는 결과가 된다.

정부승인이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 함의를 고려한 각국은 1970년대부터 다시 이 른바 에스트라다 주의를 많이 채용하고 있다. 즉 정부승인 여부에 대한 공식적인 입 장은 밝히지 않고, 양국간 필요한 외교관계만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미국, 영국, 프 랑스, 캐나다 등 여러 국가들이 앞으로는 특정 정부에 대한 승인 여부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는 결국 정치적 난처함을 피하기 위하여 명시적 정 부승인을 기피하고, 묵시적 승인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라고도 평가될 수 있다.

III. 망명정부의 승인

1919년 중국 상해에서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종의 망명정부였다. 망 명정부의 유형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제2차 대전시 런던에 소재하던 노르웨이나 네덜란드 망명정부와 같이 원래 본국의 합법정부의 결정을 바탕으로 설립된 경우이다. 즉 독일의 침공이 시작 되자 본국 정부(의회)가 정부 소재지를 일시 해외로 이전하기로 결의하여 탄생한 망 명정부로서 전쟁기간중에만 존속하고 종전후 다시 복귀한 사례이다. 망명정부와 본 국정부간의 법적 계속성이 인정된다.

둘째, 같은 제2차 대전시 드골이 이끌던 프랑스 망명정부는 본국이 점령을 당 하자 기존 본국정부와 연계성이 없이 해외체류자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사례이다. 상해 임시정부는 후자의 예에 속한다. 이 같이 본국의 독립을 목표로 해외 독립운 동가에 의하여 수립된 망명정부의 예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경우는 후에 독립을 달성하더라도 법적 연계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영국은 1941년 외교특권확대법을 통 하여 제2차 대전시 런던에 소재한 각국 망명정부에 대하여 교전당사국으로서 일정한 대우를 보장하였다.

미국과 영국은 제2차 대전시 소련의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합병 을 법률상으로 승인하지 않았다. 이 지역에 대한 소련의 지배를 사실상으로만 승인하고, 이들 망명정부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다. 1991년 이들 3국이 소련에서 분리 되자 미국과 영국은 과거의 외교관계를 복원시켰다. 1970년대 후반 크메르루즈 정 부 하의 캄보디아는 국내적 대량 학살 등의 잔혹행위로 악명이 높았다. 1979년 베 트남은 캄보디아를 침공하여 자신의 통제 하에 새로운 정부를 세웠다.

그러나 UN 은 1989년까지 새 캄보디아 정부 대표의 신임장 확인을 거부하고, 구 정부 대표에 게 대표권을 계속 인정하였다. 1996년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 정부가 수립되어 2001년까지 존속하였으나, 탈레반 정부는 국제적으로 단 3개국의 승인을 받았을 뿐 이었다. UN 역시 탈레반 정부의 대표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상과 같은 경우 구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망명정부로서의 역할을 일정 부분 인정받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9일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1945년 2월 대독 선전포고를 하였다. 그리고 1944년 6월 30여개 국가에 비망록을 보내 당시 프랑스, that we should make and annouce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승인을 받기도 하였으나, 이는 모두 망명정부였고 정식의 정부로부터는 승인을 받지 못하였다.22) 이승만 주미 외교위원부 대표는 미 국에 대하여 UN헌장을 토의하던 1945년 4-6월의 샌프란시스코 회의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의 참여를 수차례 요청하였으나 수락되지 않았다.

한국 현행 헌법은 전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하고 있으나, 이러한 표현은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1948년 헌법이 임시정부 헌법의 개정 형식으로 성립되지는 않았으며, 임시정부의 조직이 대한민국 정부로 연결되지도 않았다. 결국 상해 임시정부와의 연계는 정치적 선언 으로서의 의미를 지닐 뿐이었다. 다만 상해 임시정부가 발행한 독립공채를 후일 대한민국 정부가 상환한 사례가 있다.

IV. 교전단체의 승인

중앙정부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킨 단체가 국가영역의 일정부분을 점령하여 이 곳에 사실상 정부를 수립하고 중앙정부의 권력을 배제하고 있다면 교전단체의 승 인이 대두된다. 미국의 남북전쟁시 영국과 프랑스는 남부를 교전단체로 승인하고, 중립을 선언하였다. 교전단체의 승인은 중앙정부에 의하여 부여될 수도 있고, 제3 국에 의하여 부여될 수도 있다. 중앙정부로서는 반란군을 교전단체로 승인함으로 써 반란지역에서의 사태에 대하여 대외적인 책임을 면할 필요가 있으며, 제3국으 로서는 교전단체를 승인하고 직접 교섭을 함으로써 반란지역에서의 이익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전단체를 승인한 제3국은 전시 중립의 지위에 놓이며, 반란지역에서의 행위에 대하여 중앙정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반란단체가 일정한 영역을 지배하고 이를 통치할 기관을 수립하고 있다면 국제법 주체성을 인정받을 기본적 특징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반란단체가 국제법적 지위를 인정받은 사례는 비교적 드물었다. 1967년부터 70년 사이 나이지리아 내전시의 아프라는 일정기간 교전단체로서의 실체를 갖추었으나, 국제적으로 거의 승인을 받지 못하였고 결국은 진압되었다. 니카라과 내전시 1979 년 6월 볼리비아, 콜롬비아, 페루, 베네주엘라 등이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을 교전단체로 승인한 예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다. 즉 제3국의 입장에서 교전단체를 승인함으로써 기존 정부와 외교적 갈등이 야기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교전단체가 국가로서 공고히 된 이후 그들과 외교관계를 맺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과 거 식민세력에 의하여 현지 사정과 무관하게 자의적으로 국경이 확정되고 독립을 한 국가의 경우 분리를 주장하는 민족분규가 발생하는 예가 많으며, 종교적 갈등이 국가의 분열을 촉진하는 현상을 목도하는 다수의 국가들로서는 반란단체에게 국제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데 더욱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공통의 이해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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