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 : 양산을 든 여인 1

I. 빛을 사랑한 화가

근대의 거장들 가운데 모네만큼 빛을 사랑하고 동경한 화가는 없다. 뿌연 아침 안개 속에서 바다 위에 오렌지색 빛을 떨구는 해돋이, 여름날 초원 에서 불타오르는 햇빛의 그림자, 산들바람에 수많은 은구슬처럼 태양 빛을 되쏘는 포플러 가로수, 차가운 석조 건물 대성당을 동그랗게 감싸 안은 석 양빛, 센강 수면에서 춤추는 빛, 짚더미 속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빛, 수련 꽃잎에 탄식하는 빛. 모네는 평생 동안 끝없이 변화하는 빛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영국해협에 면한 프랑스 북부의 항구도시 르아브르의 거리에서 부댕의 지도로 화가가 되려고 결심한 이래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모네의 화업은 대부분 빛에 바쳐진 찬가라고 할 수 있다.

흰옷을 입고 양산을 들고 언덕 위에 상쾌하게 서 있는 젊은 여성을 그린 이 작품에서도 화면 구석구석에까지 밝은 빛이 넘친다. 그것은 열어놓은 창으로 조심스레 들어와 샹들리에나 탁자 위의 정물에 고요하게 맺히는 페 르메이르의 빛이 아니라 훨씬 자유분방하게 퍼지고 반사하면서 세계 전체를 흠뻑 적시는 홍수와 같은 빛이다.

흰 구름이 떠 있는 여름 하늘은 바닥을 알 수 없는 빛의 바다처럼 멀리 펼쳐져 있다. 양산을 쓴 여인은 방금 그 하늘에서 날아 내려온 듯, 희고 풍 성한 옷자락과 밀짚모자를 묶은 푸른 스카프를 바람에 날리며 풀밭 사이에 경쾌하게 서 있다. 조금 아래쪽에서 올려다본 듯한 전체 구도는 말할 나위 없이 그녀의 모습을 하늘의 배경 앞에 또렷이 떠올리기 위한 것이다. 옷의 흰색은 하늘의 구름 색과 같고 스카프의 파란색은 하늘의 파란색과 같다. 이렇게 배경과 모티프를 같은 계통의 색으로 그리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재주라고 할 수 있다. 자칫하면 주요 모티프가 배경 속으로 녹아 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모네는 틀림없이 그러한 위험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그 어려운 과제에 도전했던 것은 충분히 승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완성된 화면에서 여인의 모든 윤곽선이 반드시 명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배경보다 훨씬 앞으로 나와 뚜렷하게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다.

화면의 아래쪽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 풀밭은 빨강이나 노랑, 주황, 파랑, 녹색의 갖가지 작은 터치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햇빛을 무지개의 일곱 색 으로 분해하여 풀잎 하나하나에 배분한 것처럼 보인다. 여인의 앞으로 뻗 은 그림자 부분에는 특히 강렬한 빨강과 녹색이 서로 겹쳐져 있다. 모네에게는 그림자마저 빛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대할 때면 실제로 모네가 그림을 그렸던 곳에 서서 상쾌한 빛을 받으며 밝은 공기를 직접 호흡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빛이나 공기만 이 아니라 풀밭을 스쳐오는 바람의 기분 좋은 촉감이나 바람이 실어오는 상쾌한 여름 낮의 향기까지 실제로 느껴지는 듯하다. 확실히 우리는 일드 프랑스의 들판에 화가와 함께 서 있게 된다.

II. 야외에서의 제작

이 작품이 주는 생생한 현실감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실제로 야외에서, 즉 현장에서 그려졌다는 사실에서 온다. 밝은 야외에 나가 이젤을 세우고 눈앞의 풍경을 그리는 것은 오늘날에는 회화 제작의 가장 일반적인 형식이지만 모네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매우 혁신적인 일이었다. 실제로 모네나 피사로, 시슬레가 센강 강변에 이젤을 세우기 전까지는 설령 풍경화라 하더라도 간단한 스케치 외에 정식 유화 작품은 아틀리에에서 그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사실주의를 표방한 쿠르베도 대작 <화가의 아틀리에>에서 볼 수 있듯이 기억에 의존하여 아틀리에에서 풍경을 그렸다. 물론 여기에는 오늘날의 튜브에 든 물감 같은 편리한 용품이 없었기에, 만약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려면 물감 덩어리와 그것을 녹일 수많은 그릇을 준비해 가야 한다는 실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19세기 중엽 존 랜드라는 미국 화가가 튜브에 든 물감을 고안했다고 전하는데, 만약 이 발명이 반세기쯤 늦어졌더라 면 오늘날 역사에 인상파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인상파 회화가 튜브 물감으로부터 생겨났다고 할 수는 없다.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미 1830년대 바르비종파 (자연주의를 지향하 는 예술가 그룹으로 이 명칭은 1830년경부터 그들이 살던 파리 교외의 작은 마을 바르비종에서 유래했다.) 화가들의 시대부터 있었던 회화의 야망 가운데 하나였다. 갖고 다닐 수 있는 편리한 물감이 발명된 것은 그때까지 매우 어려웠던 일을 쉽고 편리하게 만들어준 데 지나지 않는다. 다만 그 덕분에 1870년대 젊은 화가들 은 마음대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그때까지의 회화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눈앞의 자연에서 발견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태양 빛으로 차고 넘치는 세계였다.

III. 인상파의 등장

르아브르의 항구나 파리 교외 아르장퇴유의 거리에서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이 발견한 것은, 자연은 태양 빛의 작용에 따라 여러 가지 색 으로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종래의 회화관에 따르면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각각의 고유한 색을 지니고 있었다. 다시 말해 녹색의 풀은 언제나 녹색이고 파란 옷은 어디까지나 파란 옷이다. 다만 그 녹색이나 파랑이 때 에 따라 명암의 변화를 보일 뿐이다. 명암의 변화는 구체적으로는 흰색에서 검정에 이르는 갖가지 회색으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밝은 파랑, 어두운 파랑이라는 밝기의 차이는 있어도, 같은 사물은 언제나 같은 색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모네는 태양 빛 아래에서는 자연의 사물들이 고유의 색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초록의 풀이 때로는 석양빛의 반사를 받아 붉게 빛나기도 하고 파란 옷 위에 오렌지색 햇살이 흐르기도 한다. 이는 말할 나위도 없이 빛의 작용 때문인데, 모네는 이 빛의 작용을 망설임 없이 색의 세계로 바꿔놓았다.

예를 들어, <양산을 쓴 여인>에서 주인공은 흰 드레스를 입고 있다. 이 드레스에는 파란 하늘이나 붉은 들꽃의 빛이 미묘하게 비치고 있다. 그래서 모네는 흰옷 위에 옅은 파랑이나 분홍의 터치를 더했다.

흰옷은 어디까지나 희다고 믿었던 당시 사람들에게 이것은 쉽게 이해되는 일이 아니었다. 역으로 말하면, 만약 흰옷에 파랑이나 분홍의 터치가 있다면 그것은 빛의 반사가 아니라 파랑이나 분홍 무늬가 있는 것으로 받아 들여질 위험마저 있었다. 실제로 르누아르가 현재 오르세미술관에 소장되 어 있는 <햇빛 속의 누드>를 발표했을 때 여인의 피부 위로 떨어지는 빛의 반점을 이해하지 못한 어떤 비평가는 “죽은 사람의 피부에 생기는 반점으로 뒤덮인 시체와 같은 몸뚱이”라며 비난했을 정도다.

이는 외계를 보는 인간의 눈이 얼마나 습관이나 약속에 규제되고 있는지를 잘 말해 준다.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그러한 습관에 사로잡히지 않은 순수한 감각 세계를 추구했다. 현실의 대상이 실제로 어떤 색이든, 그들은 자기 눈에 비친 빛을 그대로 캔버스 위에 번역했다. 그들이 그린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이라기보다 그들의 눈에 비친 자연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주어진 인상파라는 이름은 처음에는 험담이었지만 의외로 그들의 본질을 정확하게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이 인상파라는 이름 역시 모네가 그린 풍경화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은 1872년에 그려서 1874년 ‘화가·조각가·판화가 협회 전’에 출품한 <인상 – 해돋이>라는 작품이다. 이 전람회는 모네를 비롯하여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레, 세잔 등 당시 살롱에서는 좀처럼 입선할 수 없었던 젊은 화가들이 모여서 독자적으로 기획한 그룹전이다. 나중에 ‘제1회 인 상파 그룹전’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 중요한 사건인데, 물론 이때는 아직 인상파라는 이름은 없었다.

이 전람회를 본 <샤리바리> (19세기에 발간되었던 프랑스의 풍자 신문)의 미술 기자 루이 르루아가 모네의 <인상 – 해돋이>를 들어 <인상주의자들의 전람회>라는 상당히 긴 비평을 썼다. 비평이라고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비난과 조소로 가득 찬, 철저하게 전람회를 깎아내리는 글이었는데, 그 덕분에 오히려 ‘인상파’라는 악명만은 천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르루아 역시 비평문을 쓰면서 저널리스트적인 흥미에서 붙인 ‘인상파’라는 이름이 나중에 그 반대의 의미로 지금과 같은 큰 무게를 지니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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