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 보호권 1
I. 외교적 보호권의 의의
국제위법행위로 인하여 자국민이 외국에서 피해를 입은 경우, 피해자의 국적 국이 그를 보호하고 손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는 절차를 외교적 보호(diplomatic protection)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국제법상의 외교적 보호는 국가의 전속적 권리로 취급되었다. 즉 자국민에 대한 피해는 곧 국가 자신의 피해이며, 국가는 자신의 피해에 관한 청구 권을 행사한다는 것이었다. 외교적 보호권은 국가 자신의 권리이지 의무는 아니므 로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어떠한 내용의 청구를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국적국에 달려 있다. 따라서 자국민이 위법한 피해를 당했을지라도, 정치적 고려를 통하여 아 무런 청구를 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외교적 보호를 통하여 외국으로부터 피해배상금을 받아도 국제법은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관여하지 않는다. 이는 개인과 국적국간의 국내법적 문제에 불과하다.
다만 외교적 보호에 관한 ILC 규정 초안 제19조는 외교적 보호에 관하여 다음 과 같은 권고를 하고 있다. 즉 첫째, 특별히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외교적 보호의 행사가능성을 당연히 고려할 것. 둘째, 외교적 보호의 행사 여부와 배상의 내용에 관하여 피해자의 의견을 가능한한 고려할 것. 셋째, 배상금을 받으면 합리적 인 비용공제 후 피해자에게 지불할 것. 다만 ILC가 이를 “실행의 권고”(recommended practice)라고만 표현한 것은 아직 이 내용이 관습국제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 한 것이다.
외교적 보호권에 관한 이론적 출발점은 이른바 Vattel의 의제이다. Vattel은 외 국인에게 피해를 입힌 자는 간접적으로 그를 보호할 권리가 있는 국가를 침해한 것 이라고 주장하였다(whoever ill-treats a citizen indirectly injuries the State, which must protect that citizen). 다만 신민의 잘못이 곧바로 국가나 군주의 책임으로 돌려질 수는 없고, 현재 군주가 신민의 과오를 시정하기 거부하거나 범인의 처벌을 거부하면 비로소 그에게 책임이 귀속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자국민이 외국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는 데 대하여 국가가 이해관계를 갖는 것 은 틀림없으나, 국민에 대한 피해가 곧 국가에 대한 피해라는 주장은 사실 지나친 자국민의 권리를 대신 주장한다고 보는 것이 현실에 더욱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 과장이다. 자국민의 피해에 대한 국가의 청구권이 국가 자신의 권리라기보다는 고 Vattel의 이론에 입각한 외교적 보호제도가 확립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만이 국 제법의 주체라는 전통 국제법 체제 속에서 개인은 국제무대로 직접 접근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개인에 대한 피해는 곧 국가 자신의 피해라는 의제를 통하 여만 개인은 국제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이는 그 이전 외국에서 피해를 입은 개인이 현지 관헌에 의한 구제를 받지 못하는 경우 자력구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비하여 국제법상 개인의 지위를 크게 강화하는 기능을 하였다. 즉 국가 가 배상청구의 주체로 나서게 됨으로써, 개인으로서는 위험스러운 자력구제에 의존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지난 약 2세기 동안 외교적 보호제도는 국제 사회에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기본적인 역할을 하였다. 반면 P. Jessup이 외교 적 보호권 행사의 역사는 제국주의와 달러 외교사의 한 측면이라고 비판하였듯이 강대국의 대외압박의 주요 수단이기도 하였다.
오늘날은 상황이 바뀌었다. 개인도 국제법상의 권리 주체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 다. 국가와 개인이 별개의 법인격이라고 본다면 개인의 권리가 전적으로 국가이익 속에 함몰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타당하지 않다. 그러나 국제인권법이 크게 발달 한 오늘날에도 개인이 국제법상의 권리구제수단을 직접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는 국가에 의한 외교적 보호가 아직도 외국에서 권 리침해를 당한 개인의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다음 PCIJ의 1 Mavrommatis Palestine Concessions 사건 판결과 ICJ의 2 Barcelona Traction, Light and Power Company 판결은 외교적 보호권의 법적 성격 에 관한 기존의 국제법상의 인식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외교적 보호권의 법적 성격 판례
1. The Mavrommatis Palestine Concessions (Jurisdiction) Greece v. U.K., PCIJ Reports, Series A, No. 2, p. 12
[그리스인인 Mavrommatis는 팔레스타인의 통치국이던 오토만제국과 철도부설에 관한 양허계약을 체결하였다. 제1차 대전후 팔레스타인이 영국의 위임통치에 놓이 알게 된 후, Mavrommatis는 영국에 대하여 이 계약 불이행에 다른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어 그리스가 외교적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자, 그리스 는 PCIJ에 영국을 제소하였다. 아래 판결문은 외교적 보호권의 행사란 국가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2. 헌법재판소 2000년 3월 30일 선고 98헌마206 결정
[이 사건 청구인들은 과거 일제에 의하여 징용되었다가 부상 등의 피해를 입었다. 이들은 전후 일본에 계속 거주하여 왔으나 일본정부로부터는 아무런 원호보상을 받 지 못하였다. 사건은 한일 청구권협정 제2조가 양국간에 해결된 청구권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상의 논란에서 비롯되었다. 일본 정부는 외국인은 원호보상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또한 이들 징용피해자들에 대한 원호보상은 청구권 협정에 의 하여 법적으로는 이미 해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한국 정부는 재일한국인들의 피해보상에 대한 권리는 협정을 통한 해결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었다. 따 라서 이들은 한국 정부로부터도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였다. 청구인들은 이 같은 양국 정부의 입장 차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한국 정부가 이 사건을 청구권협정 제3조에 규정된 분쟁해결절차의 하나인 중재재판에 회부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 하였다. 청구인들은 이 같은 공권력의 불행사는 국민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를 위 반한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하였다.]II. 국적에 관한 행사원칙
1. 국적국에 의한 행사
개인의 피해에 대하여는 국적국만이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수 있다. 누가 국민인가는 1차저그로 해당국의 국적법에 따라 결정된다. Nottebohm 판결에서 ICJ는 원래 독일인이던 Nottebohm이 일시방문을 통하여 진정한 유대(genuine connection)가 없던 리히텐슈타인에 귀화를 하였다면, 그의 재산을 몰수하였던 과테말라로서는 : 히텐슈타인의 외교적 보호를 승인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 판결은 국적이라 는 사회적 사실을 잘 파악한 판결이라는 찬사도 받았지만, 이후 국제인권법적 관점 이나 현대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적절한 결론인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국제법위원회 외교적 보호 규정초안은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수 있는 국적국 의 정의에서 “진정한 유대”의 필요성을 의도적으로 포함시키지 않았다. 현대와 같 이 경제의 세계화와 인구의 국제이동이 일상화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Nottebohm 판결식의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을 외교적 보호로부터 배제시키 는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점을 우려하였기 때문이었다.
2. 국적계속의 원칙
피해의 발생시부터 국가가 국제청구를 제기할 때까지 자국적을 유지하는 자에 대하여만 소속국은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수 있다. 이를 특히 국적계속의 원칙 (principle of continuous nationality)이라고 한다. 이는 개인이 본래의 국적을 강대국의 국적으로 바꿈으로써 강대국의 권력적 개입이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원칙으로 국제법상 잘 확립된 내용의 하나이다. 다만 국적국의 청구가 제기된 시점 이 아니라, 청구가 최종적으로 해결된 시점까지 국적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선례도 있다. 그러나 국제청구는 최종 해결까지 통상 장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개인의 국적변경의 자유를 좀더 보호한다는 의미에서는 청구시점까지로 국적계속의 요구를 제한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국제법위원회 규정 초안도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피해 발생시와 청구제기시 국적이 동일하였다면 국 적은 계속되었다고 추정된다.
국적계속의 원칙의 엄격한 고수는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국가승계에서와 같이 자신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국적이 변경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국제법위원회 규정초안은 피해 발생 이후 청구와 관계없는 이유로 국적이 변경된 경우 현재의 국적국이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수 있다는 예외를 제시하고 있 다(제5조 2항). 단 새로운 국적 취득이 국제법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신국 적국이 구 국적국을 상대로는 청구를 할 수 없다(제5조 3항). 또한 선박운항과 관련 된 피해가 발생한 경우 이에 근무하던 선원을 위하여는 그 국적과 관계없이 선박의 기국이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수 있다. 선원의 국적국 역시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제18조).
3. 이중국적자
이중국적자에 대하여는 그중 어느 국가라도 제3국에 대한 외교적 보호를 청 구할 수 있다. 이중국적국이 공동으로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제6조).
한편 이중국적자의 경우 국적국 상호간에도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수 있는가? 「1930년 국적법 저촉에 관한 문제의 헤이그 협약」도 이중국적자는 각각의 소속국 이 자국민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이중국적자 소속국 상호간에는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제3조 및 제4조). 그러나 형식적으로 이중국적자이나 실태를 반영한 외교적 보호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에 입각한 판례도 적지 않았다. 아래 미국과 이탈리아 이중국적자였던 Merge 사건 판정은 그러한 입 장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에 국제법위원회 규정초안 제7조도 이중국적의 경우 우세한(predominant) 국적국은 타방 국적국에 대하여도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있다고
규정하였다. 이는 개인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보다 긍정적이다.
4. 무국적자 및 난민
국적국만이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수 있다고 한다면 무국적자나 국적국의 박해를 피하여 도피한 난민의 경우 외교적 보호로부터 사실상 배제된다. 국제법위원회 규정초안 제8조는 무국적자와 난민의 경우 합법적인 상거주지국 (lawfully a habitually resident in that State)이 이들을 위한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 하고 있다. 이는 관습국제법의 반영이라기보다는 국제법의 발전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5. 기업과 주주
개인뿐 아니라, 기업을 위하여도 국적국은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수 있다. 실제로는 개인보다 기업을 위한 외교적 보호의 행사례가 더 많을 것이다.
기업의 경우 통상 그의 등록지법 국가를 국적국으로 본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서는 기업과 형식적 등록지국간에 별다른 유대가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업은 나름대로의 이득을 위하여 단지 그 국가에 등록만 하였을 뿐, 그 나라는 실질적인 기업활동과는 관계가 없는 경우이다(이른바 paper company). 이러한 국가는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명목상의 자국 기업을 위하여 적극적인 외교적 보호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다. 기업은 그러한 위험까지 감안하고 연고가 없는 곳에서 회사를 설립하였다 고 보아야 하는가? 그럴 경우 기업의 실질적인 국적국이 외교적 보호를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가? 국제법위원회 규정초안은 기업이 다른 국가(A) 국민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고, 기업이 등록지국(B)에서는 실질적인 사업활동이 없고, 경영 과 회계운영의 중심지가 다른 국가(A)에 있는 경우, 그 국가(A)를 기업의 국적국으 로 인정하자고 제안하고 있다(제9조).
기업을 위한 외교적 보호에 있어서 기본원칙의 하나는 주주들의 국적국이 아 닌 기업의 국적국이 외교적 보호를 행사한다는 점이다. 이 원칙은 ICJ의 Barcelona Traction 판결에서 분명하게 확인된 바 있다. 이 회사는 스페인에서 전력공급사업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캐나다에서 설립되었다. 다만 회사의 실질적 대주주는 벨기에 인들이었다. 후일 이 회사가 스페인 법원에서 파산선고를 받자, 초기에는 캐나다가 사태 해결을 위한 외교교섭을 벌였으나 곧 포기하였다. 그러자 대주주의 국적국인 벨기에가 나서서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려 하였다. ICJ는 캐나다가 이 회사의 국적국임을 확인하였다. 문제는 결과적으로 피해를 본 벨기에인 (88%의 주주들을 위하여 벨기에도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수 있느냐였다. ICJ는 회사와 주주는 별개의 법인격 을 가지므로, 회사에 대한 피해가 항상 곧바로 주주의 권리침해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따라서 주주의 국적국에게도 동등한 외교적 보호권을 인정한다면 더 큰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즉 ICJ는 기업에 관하여는 원칙적으로 기업의 국적국만이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이 판결에 서 재판부는 회사가 등록지국에서 소멸하였을 때와 등록지국 자신이 가해자로서 주주로서는 자신들의 국적국 외에는 별달리 의존할 국가가 없는 경우에는 주주의 국적국도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수 있을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국제법위원회 규정초안은 1) 회사가 그 피해와 관계없는 이유로 인하여 등록 지국법상 더 이상 존속하고 있지 않을 때, 2) 회사의 국적국이 피해의 책임자로 주 장되고 있으며, 기업활동을 하기 위하여는 국적국에서의 등록이 필수적이었을 때는 주주의 국적국도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수 있다고 제시하였다(제11조). 이러한 기준 이 관습국제법의 반영인지 여부에 대하여는 논란이 있다. 다만 위법행위가 회사의 이익과는 별도인 주주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한 경우 주주의 국적국이 외교적 보호를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제12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