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승인의 방법
승인은 부여국의 일방적 행위이다. 따라서 승인의 부여 여부는 승인국의 의도 에 달리게 된다. 승인의 방법이란 결국 이러한 의도를 어떻게 표시하느냐의 문제이 다. 실제 국가가 타국을 승인할 때는 다양한 용어와 방법을 사용한다. 보통은 아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승인의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시한다(명시적 승인).
그러나 때로는 승인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외교관계의 수립, 국가간 중요 한 조약의 체결 등 명백히 국가만을 상대로 취할 수 있는 행위를 통하여 승인의 의 사가 표시되기도 한다(묵시적 승인). 예를 들어 일본은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 코 조약의 발효로 주권을 회복하게 되자 당시 연합국 총사령부의 동의하에 동경에 파견되어 있던 대한민국 주일 대표부에 대하여 정상적인 외교관계가 개설되기 전 까지 임시로 정부기관으로서의 지위와 영사 상당의 특권을 부여하겠다는 구상서를 보내 왔다. 일본 정부는 이를 통하여 대한민국을 묵시적으로 승인하였다고 설명하 고 있다. 9) 국제법상 묵시적 승인을 의미하는 행위로 무엇이 있는지는 명확하게 말 하기 어렵다. 묵시적 승인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승인을 부여하려는 당사국의 의도 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일정한 외교적 행위가 묵시적 승인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히기도 한다. 1954년 미국, 영국, 프랑스, 소 련 4개국은 한국문제와 인도차이나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제네바 회담의 개최를 제 안하면서 남북한과 중국(북경 정부), 그리고 기타 이해관계국 정부를 이에 초청하였 다. 당시 4개국 외무장관은 이 회담의 개최나 초청이 어떠한 경우에도 이들 국가에 대한 외교적 승인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국제기구나 다자조약의 동시 가입, 통상대표부의 설치 허가, 장기간의 양국 회담, 상대국의 여권 인정 등은 묵시적 승인의 예로 인정되지 않는다. 오늘날 은 묵시적 승인의 방법은 잘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묵시적 승인의 인정도 과거보다는 엄격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승인을 법률상 승인(de jure recognition)과 사실상 승인(defacto recognition)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대체로 신생국(또는 정부)의 안정성과 영속성에 의 심이 있을 때 일단 사실상 승인을 하였다가, 후일 국가(또는 정부)가 안정성을 확보 하면 법률상 승인을 하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자 미국, 중국 (현재의 대만), 필리핀 등은 사실상의 승인만을 부여하였다. 이후 1948년 12월 12일 UN 총회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합법정부로 승인하는 결의 제195호가 채택되자, 1949년 초부터 미국, 영국, 중국(대만), 필리핀 등이 대한민국 정부에 대하여 정식의 승인을 부여하였다. 12) 미국은 이스라엘이 1948년 5월 14일 독립을 선언하자 즉시 사실상의 승인을 하였다가, 1949년 1월 31일 법률상 승인을 부여하였다. 때로는 상 대방에 대한 정치적 불만의 표시로 사실상의 승인만이 부여되기도 한다. 영국은 공 산혁명 후 소련에 대하여 1921년 사실상의 승인만을 부여하였다가, 노동당 정부가 집권하자 1924년 소련을 법률상 승인을 하였다.
과거 법률상 승인과 달리 사실상 승인은 후일 철회될 수 있다고 주장되었다. 사실상 승인의 철회는 중남미 국가의 독립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미국에 의하여 여 러 차례 활용되었다. 그러나 사실상의 승인은 자유로이 철회할 수 있다는 국제관행 이 성립되어 있는가는 의문이다. 안정성을 의심받던 사실상 승인의 대상국이 국가 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였다면 이미 부여된 승인은 철회될 수 없다. 반면 사실상 승인이 승인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대상에 대하여 부여되었다면 이론적으로는 승인 자체가 무효이다. 사실상 승인의 대상국이 결국 소멸하였다면 별달리 승인을 철회할 필요가 없다. 결국 선언적 효과설의 입장에 선다면 법률상 승인과 사실상 승인간의 구별은 이론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과거 각국의 국내법 정과 국제법정은 사실상 승인이 부여된 경우 이를 실효적 정부의 증거로 수락하고 국가의 대표성을 인정하였으며, 법률상 승인과 특별히 구별하지 않는 것이 통례였 다. 그러나 법률상 승인과 사실상 승인의 구별론이 지닌 이론적 문제점과는 상관없 이 국제사회에서 일단 부여된 사실상 승인의 철회가 발표된다면 특히 그것이 강대 국의 조치였다면 대상 국가(또는 정부)에게는 커다란 정치적 타격이 됨은 물론이다.
승인을 조건부로 부여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신앙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조건으로 국가승인을 할 수 있는가? 승인을 선언적 효과설의 입장에서 파악한다면 객 관적으로 성립한 국가가 후일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하여 승인이 무효로 되지 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승인의 조건이란 정치적 의미를 갖는데 불과하다. 14) 「몬테비데오 조약」 제6조도 승인은 무조건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로서의 요건을 미처 갖추지 못한 대상을 승인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상조의 승인(premature recognition)이라고 한다. 상조의 승인은 종종 대상국가에 대 한 사실상의 독립지원행위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1903년 파나마가 콜롬비아로부터 의 독립을 선언하자 미국은 곧바로 승인을 하였는데, 이는 파나마 운하의 부설권을 획득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였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시 슬로베니아, 크로 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승인 역시 상조의 승인이 었다고 해석된다. 상조의 승인은 이론적으로 무효라고 할 수 있으나, 위의 예에 서 볼 수 있듯이 이를 통하여 대상국가는 독립국가로서의 존재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간의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
1.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양국 국민의 이익과 염원에 부응하여 1992년 8월 24일자로 상호 승인하고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결정하였다.
2.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UN 현장의 원칙들과 주권 및 영토보전 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상호 내정불간섭, 평등과 호혜, 그리고 평화공존의 원칙 에 입각하여 항구적인 선린우호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에 합의한다.
3. 대한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합법정부로 승인하며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4.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양국간의 수교가 한반도 정세의 완화와 안정, 그리고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5.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한민족의 염 원임을 존중하고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
6.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1961년의 외교관계에 관한 빈협약에 따 라 각자의 수도에 상대방의 대사관개설과 공무수행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 고 빠른 시일 내에 대사를 상호 교환하기로 합의한다.
II. 승인의 취소
특정한 실체가 국가로서의 존속이 중단되는 경우 이에 대한 별도의 승인취소 는 필요하지 않다. UN 회원국이던 동독이 1990년 독일의 일부로 흡수되어도 이에 대한 별도의 조치는 필요 없었다.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관계를 맺은 조치는 법적으로 대만에 대한 국가승인을 취소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중국의 대표권이 북경 정부에 있음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였다.
일단 부여된 승인이 법적으로 취소될 수 있는가? 미국은 기왕에 법률상 승인을 부여하였던 당시 니카라과 정부가 국내적으로 통치권을 확립하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에서 1856년 7월 승인을 취소하였다. 또한 미국은 1920년 아르메니아 공화국이 더 이상 독립국으로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 이미 부여된 사실상의 승인을 취소한 바 있다. 창설적 효과설에 입각한다면 승인의 철회를 통하여 기왕의 국가에 대하여 법률적 사망선고를 할 수 있다고 주장된다. 그러나 승인을 객관적 사실에 대한 확인 선언이라고 보는 선언적 효과설의 입장에서는 승인의 대상이 소멸하지 않는 한 승인의 취소는 별다른 법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몬테비데오 조약」 제6조도 승인은 철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1983년 10월 9일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 일행의 버마 방문시 북한 공작원에 의 한 아웅산 묘소 암살폭발사건으로 17명의 한국인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버마 정부는 북한 정부에 대한 외교적 지위의 승인을 취소(derecognize)한다고 발표하였 다. 내용상 이는 외교관계의 단절 선언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
● 버마(미얀마) 정부의 발표문(1983. 11.4)
Four ministers and other 13 members of the Republic of Korea were killed and 14 Burmese were wounded according to the investigation which started on Oct. 10. It is completely found that the confession of the two captured Korean nationals, together with the captured equipment and evidence, point out firmly that the explosion which occurred on Oct. 9 at the mausoleum was firmly established to be the work of saboteurs sent by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The captured were identified as a major and two captains from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The two saboteurs captured alive will be tried according to the jurisdiction of Burma. Moreover, Burma has decided to derecognize the diplomatic status of the government of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The diplomatic mission of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has been ordered to leave Burma within 48 hours, with effect from 13:00 hours Burma standard time(06:30 GMT)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