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피치 미술관에서 <봄>과 함께 가장 인기 있는 <비너스의 탄생>은 그저 신화의 내용을 옮겼다고만 단정할 수 없는 측면을 지닌다. 이 작품과 크기가 거의 같은 <봄>이 면밀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사실 보티첼리 작품 중에 널리 알려진 이 두 작품이 내용상 서로 관련될 거라는 지적은 일찍부터 있었다. 바사리가 이미 이 두 점을 종합 정리하여 고찰했고, 허버트 혼도 1908년에 간행된 보티첼리에 대한 고전적 명저 <알레산드로 필리페피, 속칭 보티첼리>에 이렇게 썼다.
보티첼리가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 데 메디치를 위해서 그린 이 두 점의 비너스 그림에는 아프로디테에 대한 이중의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어머니 없이 바다에서 태어난 우라노스의 딸인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즉 천상의 비너스 그리고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인 아 프로디테 판데모스, 즉 일반적인 성격의 비너스이다. 후자의 비너스 가 보티첼리의 <봄>에 정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봄>은 패널에 그렸고 <비너스의 탄생>은 캔버스에 그렸다. 제작 시기도<봄>은 1470년대 후반이고 <비너스의 탄생>은 1480년대 중엽이라 약간 어긋난다. 하지만 둘 다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를 위해 그린 그림이며, 게다가 비너스를 주제로 삼은 점에서 당연히 관계가 있다. (사실 <봄> 은 후세의 속칭이며, 본래 이 작품은 고대의 시인과 폴리치아노가 노래한 ‘비너스의 통치’를 나타낸 것임은 1893년에 바르부르크의 고전적 논문이 나온 이래로 아르간과 살비니 같은 연구자들까지 널리 인정했다. 또한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육촌에 해당하는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의 학문적 스승이었다.)
혼이 지적한 대로, 이 두 작품은 고대 그리스 이래 전해 내려온 두 종류의 비너스를 그렸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겠다. 혼이 말한 ‘아프로디테 우라니아’와 ‘아프로디테 판데모스’란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 혹은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이라는 ‘사랑’의 두 가지 측면을 가리키는 여신으로, 그리스에서는 꽤 일찍부터 예배의 대상이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향연>에서 파우사니아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서 본 것처럼 보티첼리의 <봄>은 중앙의 비너스에 모든 것이 집중되는 구심적 구도 형식을 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체로서 화면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운동 방향을 나타낸다. 게다가 큐피드를 비롯한 아홉명의 등장인물이 왁시글거리는 화면이 마치 연극 무대처럼 깊이감이 거의 없이 평면적으로 연출된 것도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옮겨가는 방향성을 강조한다.
면밀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구석구석 세심하게 구성된 이 화면에서 이런 방향성은 결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하물며 그 방향이 서구 회화의 기본적인 방향과 정반대라면 더욱 그렇다. 하인리히 뵐플린 Heinrich Wölfflin, 1864-1945 이래 자주 논의된 대로, 서구 회화에서는 일반적으로 문자를 쓰는 방향과 마찬가지로 이야기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되었다. 그 심리적 그리고 조형적 연원을 여기서 고찰하기는 어렵지만, 얼른 떠오르는 몇몇 예만 봐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겨가는 방향성이 지배적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봄>과 같은 우의적 의미를 가진 주제에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보티첼리의 <카룬니아비방>는 배후의 건축물을 훌륭하게 입체적으로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인물을 동일선상에 배치한 평면적인 구성인데다 이야기는 분명히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점은 이 작품의 바탕이 되었던 프로그램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바사리가 언급한 대로, 보티첼리로 하여금 이 그림을 그리도록 한 것 은 고대 그리스의 거장 아펠레스(Apelles, 기원전 352-기원전 308)가 그림그렸다고 전해지는 같은 주제의 명작이다. 아펠레스의 원작은 사라져버려 르네상스 시대에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지만 그 내용은 루키아누스(Lucianus, 125?-180)에 의해 전해졌다. 보티첼리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화가의 창작 의욕을 자극한 작품이었다. 알베르티가 1435년에 저술하여 이후 화가 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회화론>의 제3권에도 아펠레스의 이 그림에 대 한 상세한 설명이 실렸던 터라 당시 지식인들에게는 이 주제 자체가 상식과 같았다.
알베르티의 설명은 이렇다.
그 작품아펠레스의 그림에는 우선 귀가 커다란 남자가 그려져 있다. 그 옆에 두 명의 여인이 서 있는데, 한 명은 ‘무지’, 또 다른 한 명은 ‘시 기’라고 불린다. 화면의 다른 편에서 (그들을 향해서 ‘비방’이 찾아 온다.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태이지만 표정은 어딘지 교환해 보인다. 그녀는 오른손에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또 다른 한 손으로 는 어떤 소년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잡아당긴다. 소년은 하늘을 향해 양손을 높이 치켜들고 있다. 그 옆에는 또 다른 남자가 등장하는데, 마치 전장에서 오랜 전투에 지쳐 여위고 기력이 쇠한 것처럼 안색 이 창백하고 몰골이 지저분하고 외양이 추악하다. 이 남자는 ‘증오’ 라 불리는데 ‘비방’을 이끄는 역할이다. 여기에 더해 ‘비방’의 곁에서 그녀에게 옷을 입히고 장신구를 달아주는 두 여인이 있는데, 이들은 ‘간계’와 ‘기만’이다. 이를 무리의 뒤쪽에는 검은 상복을 입은 채 자신의 몸을 갈가리 찢는 ‘후회’라는 여인이 있다. 그리고 그 뒤에 ‘진 실’이라는 여인이 부끄러워하며 조신하게 서 있다….
알베르티의 설명 하나하나가 보티첼리의 화면과 딱 들어맞는 것을 보면, 보티첼리는 아펠레스의 ‘잃어버린 명화’를 복원하려는 의도로 <카룬니아>를 그린 것이 분명하다. 보티첼리는 알베르티 말고도 다른 전거를 활용했다. 위에 인용한 알베르티의 글에서는 왕좌에 앉은 인 물을 ‘귀가 커다란 남자’라고만 했지만, 보티첼리의 그림에서 이 인물은 당나귀 귀를 달고 있는 미다스 왕이다. 이런 점에서 보티첼리는 루키아 누스의 텍스트를 직접 읽었던 것이 틀림없다. 아무튼 피치노가 자타 공인 ‘제2의 플라톤’이었던 것처럼 보티첼리는 스스로를 ‘제2의 아펠레스’ 로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펠레스의 명작을 ‘복원’할 때, 보티첼리는 고대풍의 무대에서 이야기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도록 화면을 구성했다.
<카룬니아>가 아펠레스의 잃어버린 명화를 ‘복원’하려는 의도로 그린 것이라면 그 표현 방식과는 별개로 적어도 프로그램만은 애초부터 결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비너스의 탄생>은 어떤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건지 분명치 않다. 물론 비너스가 바닷물에서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조형화한 것은 유명한 <루도비시의 왕좌>의 부조를 비롯하여 소수지만 존재하며, 보티첼리도 아펠레스의 선례를 따라 <물에서 올라오는 비너스>를 그렸다고 전해지지만, 오늘날 우피치 미술관에서 <봄>과 함께 가장 인기 있는 <비너스의 탄생>은 그저 신화의 내용을 옮겼다고만 단정할 수 없는 측면을 지닌다. 이 작품과 크기가 거의 같은 <봄>이 면밀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사실 보티첼리 작품 중에 널리 알려진 이 두 작품이 내용상 서로 관련될 거라는 지적은 일찍부터 있었다. 바사리가 이미 이 두 점을 종합 정리하여 고찰했고, 허버트 혼도 1908년에 간행된 보티첼리에 대한 고전적 명저 <알레산드로 필리페피, 속칭 보티첼리>에 이렇게 썼다.
보티첼리가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 데 메디치를 위해서 그린 이 두 점의 비너스 그림에는 아프로디테에 대한 이중의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어머니 없이 바다에서 태어난 우라노스의 딸인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즉 천상의 비너스 그리고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인 아 프로디테 판데모스, 즉 일반적인 성격의 비너스이다. 후자의 비너스 가 보티첼리의 <봄>에 정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봄>은 패널에 그렸고 <비너스의 탄생>은 캔버스에 그렸다. 제작 시기도<봄>은 1470년대 후반이고 <비너스의 탄생>은 1480년대 중엽이라 약간 어긋난다. 하지만 둘 다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를 위해 그린 그림이며, 게다가 비너스를 주제로 삼은 점에서 당연히 관계가 있다. (사실 <봄> 은 후세의 속칭이며, 본래 이 작품은 고대의 시인과 폴리치아노가 노래한 ‘비너스의 통치’를 나타낸 것임은 1893년에 바르부르크의 고전적 논문이 나온 이래로 아르간과 살비니 같은 연구자들까지 널리 인정했다. 또한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육촌에 해당하는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의 학문적 스승이었다.)
혼이 지적한 대로, 이 두 작품은 고대 그리스 이래 전해 내려온 두 종류의 비너스를 그렸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겠다. 혼이 말한 ‘아프로디테 우라니아’와 ‘아프로디테 판데모스’란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 혹은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이라는 ‘사랑’의 두 가지 측면을 가리키는 여신으로, 그리스에서는 꽤 일찍부터 예배의 대상이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향연>에서 파우사니아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 아프로디테를 사랑의 신 에로스과 분리하는 것이 어렵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네. 그렇기에 만약 아프로디테가 한 분이라면 사랑의 신에로스도 한 분이겠지만, 실은 아프로디테는 두 분일세.
어쨌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두 분의 아프로디테 중 나이가 많은 쪽은 어머니 없이 하늘우라노스을 아버지 삼아 태어난 따님인데, 이쪽 을 우리는 하늘의 딸우라니아이라 부르지. 더 젊은 아프로디테는 제우 스와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따라서 이쪽을 우리는 범속한 여 신판데모스이라 부른다네….
-모리 신이치의 일역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