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티첼리 프리마베라 리뷰 1

I. 한편의 연극무대

봄의 아름다움과 온화함을 훌륭하게 표현한 보티첼리의 명작 <봄>에서 보티첼리는 이 그림에서 많은 등장인물을 각기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고 역할에 따른 행동을 지시함으로써 화가보다는 마치 뛰어난 무대감독으로 작품에 임한 것 같다. 만약 정말 연극 무대라면 등장인물들은 어떤 대사를 말하고 있을까. 대사를 들을 수 없는 우리는 대신 <봄>에 등장하는 유쾌하게 봄을 즐기는 여러 신들의 몸짓을 살펴보며 상황을 유추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몇가지 궁금한 점들이 생긴다.

일단, 플로라 바로 옆에서 뒤를 돌아보며 서풍의 포옹을 피하려는 님프는 대체 누구일까. 그리고 플로라는 왜 자기 바로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두 사람의 다툼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듯한 모습일까. 또 비너스의 머리 위에서 불타는 화살을 팽팽하게 당기 고 있는 큐피드는 누구를 겨냥하고 있나. 그리고 춤추는 미의 세 여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화면 왼쪽 끝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전령의 신인 메르쿠리우스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1. 플로라 VS 클로리스 = 님프

이에 대한 해답은 얻기 위해 일단 플로라 뒤에 있는 님프를 살펴봐야 한다. 님프는 바로 앞에 있는 플로라와 모든 점에서 대조적이다. 플로라의 옷은 아름다운 온갖 꽃으로 치장되어 있는데 반해 님프의 옷에는 아무 장식도 없다. 뒤를 돌아보는 님프는 뒤쫓는 존재의 손에서 도망치려는 불안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플로라는 똑바로 앞을 향한 채 느긋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인다. 또 님프는 머리카락을 흩뜨리며 두려움과 놀라움을 드러내고 있는데 반해 플로라는 머리카락에 갖가지 꽃을 꽂고 말쑥하게 차려입었으며, 아무런 불안도 놀라움도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이 대조는 보티첼리가 의도한 것이다.

근데 이 두 사람은 놀랍게도 같은 인물이다. 보티첼리 <봄>이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봄의 정경을 그린 것임을 안다면 바로 이것은 유추가 된다. <변신 이야기>에는 클로리스라고 불리는 대지의 님프가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신하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오비디우스의 시에서 꽃의 여신 플로라는 분명 이렇게 “나는 예전에 클로리스였는데 지금은 플로라로 불린다.” 말했다.

그런데 대지의 님프 클로리스는 호색한 서풍 제피로스에게 쫓기고 있다. 보티첼리의 <봄> 오른쪽 끝에 등장하는 ‘바람의 신’ 제피로스는 볼을 부풀린 채 클로리스를 뒤쫓고 있다. 클로리스는 어떻게 해서든 제피로스, 즉 서풍의 봄바람에게서 달아나려 하지만 결국 붙잡힌다. 제피로스의 손이 클로리스의 몸에 닿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봄꽃이 흘러나와 팔랑팔랑 떨어진다. 그리고 흰옷을 입은 클로리스는 화사한 꽃의 여신 ‘플로라’로 다시 태어난다.

보티첼리는 이 변신 과정을 아주 교묘하게 그려냈다. 이미 보았듯이 대지의 님프와 꽃의 여신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단 하나, 이 두 사람을 맺어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님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봄꽃이다. 이 꽃들은 님프의 입에서 넘쳐흘러 그대로 플로라에게서 떨어져 어느새 꽃의 여신이 입은 옷의 무늬가 되어버린다. 겨울동안 흰색 하나로 덮여 있던 대지가 봄이 되면서 눈부시게 다채로운 꽃들로 뒤덮이게 되었다.

2. 미의 세 여신의 윤무

보티첼리 <봄>은 자연에서 봄이 왔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인생의 봄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보티첼리가 나타내고자 했던 인생의 봄이란 뭘까? 유명한 큐피드와 프시케의 이야기에서 나왔듯 사실 서풍 제피로스는 사랑의 바람을 뜻하기도 한다. 여성은 사랑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들 하는데, 클로리스가 플로라로 변신하는 과정은 바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인 것이다. <봄>속 플로라가 머리에 쓰고 있는 화관은 지금도 서구권에서 볼 수 있는 신부의 치장으로, 새하얀 옷을 입은 깨끗한 소녀 클로리스는 봄바람에 붙잡힘으로써 성숙한 신부가 되며 이를 보티첼리가 이중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변신을 한층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화면 왼쪽에 그려진 미의 세 여신의 윤무다. 얇은 옷을 하늘하늘 휘날리면서 서로 손을 잡고  춤추는 미의 세 여신의 모습은 르네상스가 낳은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상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세 여신에게도 그림에서 주어진 역할이 있다. 미의 세 여신은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인데 인간의 몸이 가진 아름다움에 눈을 뜬 르네상스 시대에는 비너스와 함께 여성미의 이상적인 모습을 상징해왔다. 15세기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알베르티는 《회화론》에서 회화 표현의 미의 전형 가운데 하나로 이 미의 세 여신을 들고 있을 정도다.

게다가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미의 세 여신에게 여러 가지 철학적인 의미와 해석을 부여했다. 그들은 이 세 여신이 각각 ‘애욕’과 ‘순결’과 ‘아름다움’을 나타낸다고 봤다. 보티첼리가 그려낸 세 여신은 서로 자매처럼 매우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옷차림이나 치레 등이 조금씩 다르며 당연히 각자 철학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상이하다.

먼저 세 사람 가운데 움직임이 가장 크고 화려한 이는 왼쪽 끝에 있는 여신이다. 그녀는 가슴에 유난히 커다란 브로치를 달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마구 흩어져 어깨에서 등으로 흘러내리고 옷도 풍성하게 물결쳐서 마음속의 격한 충동을 드러내는 듯하다. 세 사람 가운데 움직임이 가장 화려하고 강한 것으로 보아 그녀가 관능적인 애욕의 화신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이에 반해, ‘애욕’의 여신과 마주 보면서 세명중 중간에 서있는 여신은 아무런 치레도 하지 않고 옷도 아주 소박하며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순결을 상징한다. 애욕과 순결은 원래 상반되며, 두 얼굴 사이에 마주댄 두 여신의 손은 서로 정면으로 맞부딪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두 여신의 대립도 오른쪽 끝의 ‘아름다움’의 여신에 의해 화해되고 통일된다. 아름다움은 애욕과 순결이라는 상반되는 성질을 함께 포함하며 통일하면서 등장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미의 세 여신의 윤무는 변증법적이다.

소박하고 맑은 순결이 애욕과 접촉함으로써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이 도식은 깨끗한 소녀 클로리스가 사랑의 바람 제피로스와 접촉함으로써 꽃의 여신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앞의 도식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리고 제피로스의 포옹을 피하려던 클로리스가 결국 제피로스에게 붙잡히자 입술에서 봄꽃을 토해냈듯이, 미의 세 여신 중 순결의 여신도 단호하게 애욕에 대항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왼쪽 어깨, 즉 애욕과 닿아 있는 부분은 옷이 반쯤 벗겨져 있어서 사랑에 대한 유혹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른쪽의 제피로스·클로리스·플로라 무리와 왼쪽의 미의 세 여신은 모두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눈뜸을 주제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두 무리의 가운데에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가 한 단 높게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너스의 머리 위에서 춤추는 큐피드의 불 화살은 정확하게 미의 세 여신 중 가운데 여신, 즉 순결의 여신에게로 향하고 있다.

3. 주인공 = 비너스

사실 이 작품은 보티첼리의 또다른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에 상대되는 그림으로, 원래 ‘봄’이라는 제목은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의 작가로 이름 높은 16세기의 조르조 바사리가 이 작품에 대하여 “봄을 나타내고 있다”라고 쓴 데서 유래되었다. 보티첼리는 비너스를 <비너스의 탄생>과 <봄>에서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이 본인의 중심 주제임을 더 각인시켰다.

이는 각각 작품의 구도를 보더라도 명백하다. 위에서 살펴 봤듯이, 세 명씩 구성된 사랑의 무리 사이에 위치한 비너스는 다른 등장인물보다 조금 안쪽에, 즉 화면의 구도에서 보자면 다른 인물보다 머리 하나만큼 높은 곳에 서서 왼손은 옷자락을 붙잡고 오른손은 반쯤 들어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관장하는 지배자 같은 모습을 보인다.

더구나 비너스의 지위를 한층 명확히 하기 위해, 배경의 어두운 숲이 마침 비너스 주위만 뚫려서 천연의 아치를 만들고 있다. 중세 말기 이래로 기독교 회화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아치 아래에 그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보티첼리는 그 관습을 이용하여 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 한 인물인 비너스의 머리 위에 나뭇가지 아치를 만들어 그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II. 역사적 배경

명작 <봄>의 작자 보티첼리 Botticelli, 1445~1510는 15세기 후반 피렌체의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다. 이 작품이 그려진 1480년 무렵은 ‘일마 니피코(II Magnifico, 위대한 자)’라 불렸던 메디치가의 로렌초가 피렌체를 지배하던 시기이며 뛰어난 문인이나 예술가가 많이 배출된 이른바 피렌체 예술의 황금시대다. 메디치가는 로렌초의 할아버지인 코시모 때부터 예술의 보호자로 알려졌는데, 로렌초도 스스로 시를 짓거나 고대 예술 유품을 수집하는 등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래서 그의 주위에는 철학자 마르 실리오 피치노와 장편시 <마상시합의 노래>의 작자로 알려진 시인 폴리치아노 등 당대의 뛰어난 인문주의자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기독교 사상과 고대 사상을 통일·융합하려는 신플라톤주의의 사고방식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보티첼리도 이러한 인문주의자들에게서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러나 이 <봄>은 ‘일 마니피코’ 로렌초가 아니라 로렌초의 오촌 당숙인 피에르프란체스코 디 로렌초 데 메디치를 위해 그린 것이다. 이 피에르프란체스코 디 로렌초 데 메디치도 일 마니피코 로렌초에 버금가는 예술 애 호가이자 학문적으로는 피치노의 제자였으므로, 인문주의적 경향이 강한 <봄>과 같은 작품이 그려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당시 플랑드르 지방에서는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던 유화 기법이 아니라 중세 이래 사용되던 템페라로 그려졌기 때문에 화려한 장식성이 한층 더 강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템페라는 달걀노른자 또 는 달걀흰자를 주성분으로 하고 거기에 아라비아검이나 아교를 섞은 용제에 안료를 녹여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 유화 물감이 등장하기 전까지 회 화의 주역이었다. 이탈리아에는 이미 15세기 전반에 나폴리나 베네치아 등을 중심으로 플랑드르의 유화 기법이 전해졌지만, 템페라도 아직 강한 힘 을 지니고 있었다. 템페라는 마르면 단단한 물감 층을 형성하지만 투명 물감이기 때문에 유화와 같이 덧칠이나 미묘한 살 붙이기의 효과보다는 오히려 수채에 가까운 순수하고 싱싱한 표현에 적합하다.

보티첼리의 작품이 지닌 저 꿈과 같은 투명한 색채 효과나 일본 린파琳派, 17~18세기 일본의 야마토 에(전통에 중국의 수묵화 기법을 조화시켜 형성한 장식화파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장식성 등은 대부분 이 템페라 기법에서 온 것이다. <봄>에서 배경을 숲으로 덮어버리고 인물도 가능한한 서로 겹치지 않도록 평면적인 구성을 취한 것은 템페라의 장식 효과를 강조하는 데 매우 적절한 구도법이라 할 수 있다. 보티첼리는 반에이크처럼 현실에 날카롭게 다가가기보다는 슬픈 만큼 아름다운 이상적인 미의 세계를 동경하던 서정 시인이었다.

봄의 아름다움과 온화함을 훌륭하게 표현한 보티첼리의 명작 <봄>에서 보티첼리는 이 그림에서 많은 등장인물을 각기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고 역할에 따른 행동을 지시함으로써 화가보다는 마치 뛰어난 무대감독으로 작품에 임한 것 같다. 따라서 <봄>의 구성은 연극 무대를 연상시킨다. 무대감독인 보티첼리는 등장인물 각각에 명확한 의미와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금빛 오렌지  잔뜩 달린 어두컴컴한 숲은 무대 배경에 해당한다. 가운데 있는 비너스의 머리 위 큐피드 포함해 모두 아홉 명의 등장인물은 대부분 앞뒤로 겹치지 않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평면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가운데 비너스만 다른 인물들보다 조금 뒤로 물러나 있어서 무대 전체를 지배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때문인지 관람자는 마치 객석에 앉은 관객처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꿈처럼 화려한 환상극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 극의 제목은 말할 것도 없이 ‘프리마베라(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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