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벨라스케즈 시녀

I. Diego Velazquez Meninas 재밌는 상황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에는 벨라스케스의 명작 <시녀들> 진실성이 흘러넘치는 작품이다. 그림안의 상황은 궁정안 일상생활의 한 토막으로, 등장인물은 궁정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친숙한 사람들이며 스페인 궁정의 매우 자연스러운 일상 광경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먼저 화면 왼쪽 끝에는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키가 큰 궁정 화가 벨라스케스가 자기 키보다 훨씬 큰 캔버스를 앞에 두고 한창 작업에 몰두해 있다. 한가운데에는 그 화가를 외면하고 서있는 왕녀 마르가리타가 서있다. 사랑스럽게 차려입은 왕녀는 잠자코 서서 모델 노릇을 하느라 정말 지쳐서 골이 났다. 그 옆에서 시녀인 마리아 아구스티나 사르미엔토가 무언가 말을 걸며 어린 공주를 달래고 있다. 분명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포즈를 취하도록 어르고 달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왕녀의 기분을 돌리려고 좋아하는 개를 데려왔고, 뚱뚱한 난쟁이 여자 광대 마리아 바르볼라와 왕녀의 놀이 상대 소년 니콜라스 페르투사토의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그림속 장면은 마침 그곳에 국왕 펠리페 4세와 왕비가 방안을 들렀을 때로,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와 같은 위치에 있는 국왕 부처의 모습이 방 저편에 걸린 거울에 비치고 있다. 시녀 마리아는 왕녀 마르가리타를 달래는데 정신팔려서 아직 국왕 부처가 온 것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또다른 시녀 이사벨 데 벨라스코는 당황하여 일어서서 두 손으로 치맛자락을 들고 윗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무릎을 가볍게 굽혀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있다.  이사벨 데 벨라스코 바로 뒤 어둠 속에 있는 여관장 마르셀라 데 울로아는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또다른 하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고, 뒤쪽의 열린 문 앞에는 기사 돈 호세 니에토 벨라스케스가 마침 방을 나서려는 듯 한쪽 발을 문 앞의 계단에 걸친 채 몸을 돌려 입구 쪽을 돌아보고 있다.

이 모든 인물의 움직임과 표정이 매우 자연스러우며 국왕 부처가 방에 들어온 순간의 모습을 고스란히 잘 잡아내고 있다. 관람객의 위치에 있는 국왕 부처의 모습까지 거울을 이용해 그려낸 것은 마치 반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 제목 그대로 결혼식 기념사진처럼 어딘가 의식다운 딱딱함을 지닌데 비해 벨라스케스 <시녀들>에서는 모든 것이 마치 스냅 사진처럼 자연스럽고 생생한 현실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기교적인 작품이다.

II. Diego Velazquez Las Meninas  & 거울

이러한 자연스럽고 기교적인 구도를 만들어내기까지 벨라스케스가 얼마나 많은 궁리를 했을지 충분히 짐작된다. 물론 벨라스케스는 궁정 화가로서 왕녀 마르가리타의 초상을 여러 점 그렸던 만큼, 칭얼거리는 왕녀를 시녀가 열심히 달래는 것 같은 정경도 실제로 종종 접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화면에 담는 데에는 역시 화가로서 벨라 스케스의 면밀한 계산이 있었다.

이를테면, 이 화면의 기본적인 구성은 오른쪽의 창문과 기둥에서 시작하여 정면 뒤쪽의 열린 문, 그 옆의 벽에 걸 린 거울, 그 위의 두 장의 큰 장식화와 천장, 그리고 화면 왼쪽 끝의 캔버스 에 이르기까지 격자와 같은 수직선과 수평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각각 비스듬히 몸을 기울인 두 시녀들에 의해 피라미드 꼴이 형상화되어있는데, <시녀들>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그 피라미드꼴을 중심으로 모여있다. 그림 중앙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왕녀의 모습이 의도적으로 피라미드형 삼각형을 연상시킨다. 또 왕녀가 가장 밝게 떠오르고 다른 사람들은 각각 역할에 따라 어둠 속에 잠겨 있는 교묘한 구성은 결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왕녀 마르가리타를 둘러싼 주요 인물들의 초상을 전부 한 화면에 그려 넣은 방식도 참으로 교묘하다. 사실 그림 제목과 달리 <시녀들>의 주인공은 어린 왕녀이며 그 밖의 사람들은 많든 적든 왕녀와 관계가 깊은, 이른바 왕녀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럼, 거기에는 당연히 부모인 국왕 부처가 등장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국왕 일가의 초상과 같은 형식적인 모티프로 그림을 그리면 광대나 놀이 친구나 시녀들이 등장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국왕 부처와 시녀들을 나란히 그리기 위해서는 거울에 의한 트릭을 사용했던 것이다.

벨라스케스의 거울 이용법은 반에이크의 경우와 다르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속의 볼록거울도 화면 앞쪽의 입구와 그 입구에 선 화가 자신의 모습까지 비추고 있지만 아르놀피니 부부를 포함하여 창문과 침대와 천장의 샹들리에와 바닥, 즉 화면에 그려진 모든 것을 다시 한번 다른 방향에서 본 시각으로, 돋보기로 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미니어처의 세계로 재현했다. 그런데 벨라스케스 <시녀들>속 거울은 화면에 넣을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집어넣으려는 시도를 돕기 위한 장치이다. 거울에 비친 국왕 부처의 모습은 미니어처 재현이 아니다. 벨라스케스는 거울을 이런 식으로 자주 이용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과 함께 런던 National Gallery에 있는 벨라스케스의 <거울 속의 비너스>에서는 비너스가 침대 위에서 등을 돌리고 요염하게 누워 있다. 뒤에서 보이는 벗은 몸이 아름다운 곡선의 리듬과 밝은 장미색으로 빛나고 있다. 이 훌륭한 명작에서 비너스는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미의 여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비너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수 없기에, 벨라스케스는 비너스의 머리맡에 거울을 든 큐피드를 그려 비너스의 얼굴이 거울에 비치도록 연출하고 있다. 즉 <시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보이지 않을 것을 보여주기 위해 거울의 트릭을 이용한 것이다.

III. Diego Velazquez Meninas  & 인상파적인 붓질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과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거울 활용법 말고도 또 하나의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화가가 물감을 붓에 묻혀서 그 붓을 캔버스에 내려놓는 방식, 즉 붓질(터치)의 차이다. 두 작품 세부를 확대하여 비교해 보면 그 점이 더 분명해진다. 먼저, 반에이크의 작품에서는 면밀한 마무리 덕분에 붓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에 비해, 벨라스케스의 작품에서는 화가가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붓질을 했는지 그 자취가 화면에 그대로 남아 있다.

벨라스케스 <시녀들>을 가까이서 보자. 화면 왼쪽 끝에 선 벨라스케스가 손에 들고 있는 붓은 실은 대충 휙 그은 한 줄의 선이며 팔레트를 든 손의 레이스 장식은 붓을 눕혀서 물감을 마구 문지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 자세히 보면 붓을 나타내는 선은 도중에 긁히거나 흔들리기까지 해서 도무지 붓이나 레이스 장식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신기하게도 그 긁힌 선은 당장이라도 움직일 듯한 붓으로 보이고 장난치듯 문질러 놓은 것 같은 물감 자국은 부드러운 레이스 장식으로 보인다. 이는 왕녀와 시녀들의 의상이나 장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왕녀 마르가리타의 저 가벼운 금빛 연기와 같은 금발머리도 엷은 물감을 마구 칠해 놓은 것일 뿐이다.

그러나  벨라스케스 <시녀들>의 비밀과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손 가는 대로, 무심하게 팽개치듯이 그린 모든 선과 면이 절묘한 명암 효과와 함께 현실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같은 사실주의라고 하더라도 멀리 있는 사물을 자기 손에 들고 관찰한 것처럼 정확하게 재현하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았던 15세기 플랑드르 화가들과 다른 화풍을 벨라스케스가 <시녀들>에서 나타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에이크의 세계가 실재하는 세계라면 벨라스케스의 세계는 인간의 눈에 비친 가상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근데 그 가상의 세계를 이렇게 훌륭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이 있듯 회화쪽에는 절대 색조 감각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화면에 칠해진 물감의 색조나 배합이 조금이라도 잘못되거나 그 포인트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물감은 그저 물감일 뿐 레이스 장식이나 금빛 머리카락이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절묘한 감각은 정확한 계산의 결과이기보다는 오히려 벨라스케스의 타고난 천재성에서 기인했던 것이다.

정확한 색조와 자유스러운 붓질로 정의되는 벨라스케스의 회화 기법은 먼저 대상의 형태를 정확하게 데생한 다음 정성을 들여 색을 칠해 가는 고전주의 기법과는 정반대의 것으로, 그 뒤 낭만파의 외젠 들라크루아와 인상파 화가들이 즐겨 사용한 화법이다. 벨라스케스 <시녀들>은 그 붓질에서 보자면 이미 200년 후의 인상주의를 예고하는 작품이다.

IV. Diego Velazquez Meninas 십자가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 ~ 1660)가 활약한 시대는 일반적으로 미술사에서 바로크라고 부르는 시대이며, 그 무대는 거의 스페인의 궁정이었다. 따라서 그가 그린 작품은 공식 초상화나 전쟁화 등을 비롯하여 대부분이 스페인 궁정을 위한 것으로, 그는 사실상 궁정에 고용된 관리였다. <시녀들>에 등장하는 벨라스케스의 가슴에는 산티아고기사단의 십자 문장이 자랑스럽게 달려 있는데, 이는 오랫동안 궁정에서 봉직한 그의 공로를 말해 준다.

한편 벨라스케스가 이 산티아고기사단에 가입한 것은 1658년, 즉 <시녀들>이 완성되고 2년이 지난 때이므로, 당연히 이 작품이 처음 그려졌을 때에는 벨라스케스의 가슴에 십자문장이 없었을 것이다. <시녀들>를 둘러싼 한 일화에 의하면, 작품이 완성된 것을 처음 본 펠리페 4세가 벨라스케스의 가슴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것을 보고 “자네가 중요한 것을 잊었군” 하면서 스스로 붓을 들어 십자문장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는 아직 벨라스케스가 산티아고기사단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일화가 후세에 창작된 것임은 당연하다.

이 십자문장도 벨라스케스 특유의 거칠면서도 정확한 붓질로 그려져 있다. 아무리 국왕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그릴 수는 없음은 당연하다. 따라서 이 훈장은 <시녀들> 완성후 2년 후 그가 훈장을 받고 나서 다시 그려 넣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 훌륭해서 꼭 처음부터 그려진 것처럼 보이는 까닭에, 벨라스케스가 기사단에 가입하기 전에 일부러 그려 넣어서 은근히 국 왕에게 서임을 재촉했다는 또다른 일화도 있다. 그러나 벨라스케스가 아무리 국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하더라도 궁정화가의 신분으로 그러한 일이 가능할 리는 없다.

벨라스케스가 활약한 17세기에는 스페인을 비롯하여 유럽에서는 역동적인 바로크 양식이 미술계의 대세였다. 다빈치나 라파엘로의 작품에서 추구하는 차분하고 안정된 세계와 달리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현실의 순간적인 모습을 대담한 기교로 표현하려 했던 예술 양식이었다. 그런데 벨라스케스 <시녀들>은 그다지 화려한 몸놀림이나 극적인 표현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생활이라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어떤 순간의 모습을 교묘한 구도와 훌륭한 명암 효과를 이용해 화면에 정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바로크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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