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국가라는 자격만으로 국제법상 기본적인 권리의무를 보유한다. 1949년 UN 국제법위원회의 「국가의 권리의무에 관한 선언초안」은 국가의 독립권, 영역에 대한 관할권, 타국의 국내문제 불간섭 의무, 타국의 내란을 선동하지 않을 의무, 국 가간 평등권,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존중할 의무, 국제평화를 확보할 의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의무, 무력 불사용 의무, 침략국을 원조하지 않을 의무, 무력사용을 통 한 영역취득을 승인하지 않을 의무, 자위권, 국제법상의 의무이행 의무, 타국과의 관계를 국제법에 따라 처리할 의무 등을 제시하였다. 다음은 가장 기본적인 사항만을 설명한다.
I. 주권
주권이란 개념은 역사적으로 여러 의미를 거치며 발전하여 왔다. 원래 주권은 유럽에서 교황의 권위에 대항하여 군주가 자국 내에서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는 대내적 개념으로 시작되었다. 영토주권, 국내적 관할권 등은 대내적 주권의 또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주권의 대외적 발현은 독립권이다. 즉 국가는 대외관계를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으며, 타국의 의사에 일방적으로 복종하지 않는다. 국가주권의 상호존중은 국 제관계의 기본원리이자, 국제법이 성립하는 토대가 된다.
국가가 주권의 행사를 제약하는 조약을 체결하더라도 이는 주권의 포기가 아 니며, 주권의 개념과 모순되지도 않는다. 국제사회의 일원인 국가가 국제법의 원 리에 따라 국제법에 복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국가의 대외적 독립권을 다른 각도에서 표현하면 국가의 평등권으로 나타난 다. 모든 국가는 동등한 자격에서 동등한 국제법상의 권리의무를 가진다. 즉 모든 국가는 국제법을 평등하게 적용받으며, 국제법의 정립에도 평등하게 참여한다. 국 가의 실제적 능력에 있어서는 차등이 크지만, 조약은 비당사국에 구속력을 갖지 아 니하며, 다자조약은 항상 1국 1표주의에 입각하여 채택되고 있다.
II. 자위권
III. 국내문제 불간섭 의무
모든 국가는 국제법에 위반되지 않는 한 그 영역 및 영역 내에 있는 모든 사람 과 재산에 대하여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 1국가가 자신의 국내관할권 내에 속하 는 문제에 대하여 전속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떤 국가도 타국의 국내문 제에는 간섭할 수 없다는 이른바 국내문제 불간섭의무로 표시된다. 이는 국가간 주 권평등원칙의 또 다른 표현이다.
국내문제란 국가가 타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 단독 임의로 처리할 수 있는 권능 을 가진 사항을 말한다. 국내문제는 반드시 영토적 개념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 국 가는 자국 영역 내의 사람이나 재산에 관하여 국제법의 규제를 받기도 하는 반면 (예: 외교사절에 대한 특권과 면제의 부여의무), 해외출생의 자국민에게 국적을 부여하 는 행위는 영역 외에서 발생하는 것이나 국내문제의 일종으로 간주된다.
국내문제는 반드시 고정적. 불변적이 아니고, 유동적. 가변적이다. 이론상 그 범위가 좁아질 수도 있고 넓어질 수도 있다. 국제사회가 발달하고 국가간의 관계가 긴밀해짐에 따라 국내문제의 범위는 점차 축소되어 가는 경향을 보인다. 국가간의 관계가 긴밀해지면 그만큼 여러 국가가 공동으로 처리하여야 할 문제가 많아지며, 따라서 이제까지는 국내문제였던 사항도 이에 관하여 조약이 체결되면, 그것은 더 이상 국내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다음의 PCIJ 판결문은 국제법상 국내문제의 이러 한 성격을 잘 설명하고 있다.
The question whether a certain matter is or is not solely within the jurisdiction of a State is an essentially relative question; it depends upon the development of international relations. Thus, in the present state of international law, questions of nationality are, in the opinion of the Court, in principle within this reserved domain.
For the purpose of the present opinion, it is enough to observe that it may well happen that, in a matter which, like that of nationality, is not, in principle, regulated by international law, the right of a State to use its discretion is nevertheless restricted by obligations which it may have undertaken towards other States. In such a case, jurisdiction which, in principle, belongs solely to the State, e is limited by rules of international law. (Nationality Decrees in Tunis and Morocco. Advisory Opinion. PCIJ Reports Series B No. 4, 6(1923))
간섭이란 한 국가(또는 국제기구)가 자신의 의사를 다른 국가에 강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국가가 다른 국가의 문제에 개입하더라도 그것이 강제적이 아닌 경 우에는 간섭이 아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타국에 대한 단순한 권고, 제의 또는 항의 는 간섭이 아니다. 반면 어떠한 요구를 제출하고, 이것이 수락되지 않을 경우 무력 사용을 위협한다거나 경제적 제재를 강행한다면 이는 명백히 간섭이다. 그러나 실 제에 있어서는 간섭과 불간섭의 한계를 결정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국제관계 에서 자국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타국에 대하여 갖가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는 것은 통상적인 현상이며, 이 모든 외교활동을 국내문제 불간섭 의무의 위반이라 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국가의 국력 차이에 따라 간섭의 강제성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것이다. 외견상 단순한 권고도 수용하는 입장에서는 저항하기 어려운 간섭으 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사실 국제사회에서 항상 완전한 자유의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국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UN헌장 제2조 7항은 “본질상(essentially)” 국내문제에 대하여는 UN도 간섭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제연맹 제15조 8항이 전적으로(solely) 국내문제에 대한 불간섭을 규정한 것과 대비된다. 이는 국제사회의 밀접화에 따라 이제는 전적 으로 국내문제인 사항이 매우 드물어졌음을 반영하는 변화였다.
UN에서 국내문제 불간섭 의무와 관련하여 가장 예민한 사항은 민족자결과 인 권문제였다. UN 헌장은 인권보호를 자신의 목적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그러 한 범위 내에서 인권은 국내문제라고 할 수 없다. 실제로 UN에서 특정 국가의 인권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국내문제라는 이유로 취급이 봉쇄된 예는 없었다. 인권문제 에 관한 한 UN은 거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있다. UN에서 국내문제 불간섭 조항의 적 용 여부는 누가 결정하는가? 이 점이 문제가 된다면 해당 기관에서 표결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즉 사법적으로 판단되기보다는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한편 UN의 국내문제 불간섭 의무도 헌장 제7장에 입각한 강제조치의 적용을 방해하지 않는다(헌장 제2조 7항 단서). 즉 국내문제에서 발생한 사건도 그것이 국제 평화와 안전을 파괴하거나 위협하는 경우 UN의 강제조치가 적용될 수 있다.
국내문제 불간섭 의무에 대하여도 일정한 예외가 인정된다. 합법적 정부의 요 청에 기하여 국내문제 해결에 조력하는 것은 불간섭 의무의 위반이 아니다. 외국의 침략에 대한 자위권의 행사를 제3국이 조력하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내란으로 국 가의 통제권을 상당 부분 상실한 중앙정부의 요청에 따라 내전을 진압하는 것도 당 연히 허용되는가? 비판자들은 더 이상 국가를 합법적으로 대표할 자격을 상실한 중 앙정부에 대한 지원은 분쟁 당사자간의 자주적 해결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한 다. 결국 기존 중앙정부의 정치적 정통성, 중앙정부가 실효적 지배를 확보하고 있는 정도, 내란으로 주민들의 인권이 위협받고 있는 정도, 사태의 긴급성 등을 종합적으 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또 하나의 논란거리는 인도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이다. 급박한 위험 에 처한 자국민을 구출하기 위한 인도적 개입은 비록 당사국의 허가가 없어도 국제 법상 허용된다는 주장이 있다. 현실에 있어서 아무리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더 라도 인도적 개입을 할 능력이 있는 국가는 강대국뿐이며, 그 대상은 약소국이 될 것이다. 과거 강대국이 인도적 개입을 구실로 약소국을 상대로 외국에 무력개입을 하였던 사례가 많아 제3세계 국가들은 인도적 개입을 순수하게 인도적인 문제로 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단순히 해외의 자국민을 구출하는 행위를 국제법상 자 위권의 행사라고는 보기 어렵다. 1983년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이 오직 치안이 불안 한 현지의 미국인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인도적 행동이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면 현지 정부가 사실상 치안 통제력을 상실한 경우나 심각한 자연재해 로 인하여 신속한 구제가 요청되는 경우도 국가의 정치적 독립성을 존중하기 위하 여 무고한 개인들은 오직 죽음만을 기다려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검토
2008년 미얀마를 강타한 열대성 폭풍우 Nargis로 인하여 수많은 인명피해가 났으나, 미얀마 정부는 피해자들을 신속히 구제할 능력이 없었다. UN을 비롯하여 각국 정부 와 NGO 단체들이 구호활동을 자청하였으나, 외부세력의 개입을 꺼리는 미얀마 정부 는 그 대부분을 거절하였다. 이 경우 외국이 강제적인 진입을 통하여 인명구조, 긴급 식량배급, 의료지원 등 순수한 구호활동만을 전개하고 철수한다면 이는 미얀마에 대 한 주권침해요 국제법 위반인가? 만약 미얀마 정부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특정 국가 가 헬리콥터를 통하여 극도의 위험에 처한 오지의 자국민을 구출한다면 이는 국제법 위반인가? (본서 p. 995 이하 보호책임 부분 참조)